어린이와 부모와의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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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7월 29일에 지은 것을 블로그에 옮기다.

음식점에서 생긴 일 

얼마 전에 있던 일이다. 음식점에서 한 초등 학생 3, 4 학년으로 보이는 사내 아이가 음식점 식탁 위의 한쪽에 있는 화면에 나오는 광고와 여러 가지 조작에 한눈이 팔렸다. 그리고 그 내용은 어린이 들이 좋아하는 만화 영화라든지 게임 등의 내용이었는데 정작 궁금해 질 만한 내용이 되면 한번 보는데 500 원을 내야 한다는 것이어서 꼬마 아이는 엄마 한테 물어보고 스위치를 눌러야 했다. 그런데 아이의 엄마는 “그런데다가 돈을 쓰지 말고 먹는데에 돈을 쓰는게 낫지 않니”라는 말로 핀잔을 주자 아이는 단념하고 아빠에게 조르기 시작했다.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해보게 500 원만 달라고 했지만 아빠의 답변도 안된다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아빠가 보고 판단해서 안된다고 한번 말하면 안되는 거야. 이런 것에 돈을 쓸 가치가 없어요. 네가 공부하고 네게 도움이 되는 것에는 아빠가 도와 준다.”가 그 이유였다. 소년은 잠시 단념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음식이 나오는 동안에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는 것도 아니고 아무런 할 것이 없자 다시 아까 그 광고 보드에 이리 저리 손을 놀렸다. 아이에게는 굉장히 흥미로운 모양이었다. 

이윽고 꼬마는 다시 아빠에게 조르기 시작했는데 이번에는 역사 기행이나 과학 상식이 나오는 퀴즈를 할 테니 500 원을 내 달라는 설득력 있는 요구였다. 그러나 고집스런 아버지를 설득하기에는 꼬마의 나이가 모자랐던 것이 아버지는 네가 하고 싶으면 해도 좋지만 집에 가서 혼날 각오가 되어 있으면 하라는 으름에는 겁을 먹고 울음이 터지는 것을 겨우 겨우 참아야 하는 어린이였다. “왜 아빠는 퀴즈를 하는 것이 공부하는 것이 되고 도움이 되는데도 안 된다는 거야?” 이것이 어린이의 마지막 변론이었고 그 후 더 이상의 대화는 끊겨 버렸다. 아까 먹은 겁에 맛을 잃었는지 먹는 밥도 목에 잘 넘어가지 않았다.


라이언 프로젝트(일명 라이언 소년의 우물)

캐나다의 라이언이라는 어린이의 이야기이다. 1998년 6 살 박이 아이가 학교에서 수업을 통해 아프리카의 어린이들은 물이 없어서 고생하고 있고 우물을 팔 돈이 없어서 물을 마시지 못해 죽어가거나 더러운 물을 마셔서 전염병에 걸려 고생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라이언은 수업이 끝나고 선생님께 우물을 파려면 얼마가 드냐고 물었는데 선생님은 7 만원이 든다고 가르쳐 주었다. 그래서 아이는 집에 돌아와 엄마에게 7 만원을 달라고 하면서 그 돈을 아프리카에 보내서 우물을 파게 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엄마의 답변은 한마디로 거절이었다. 그렇게 큰 돈을 줄 수 없다는 것이고 아프리카에 대해 생각한 것으로도 충분하니까 됐다는 것이었다. 꼬마는 저녁에 다시 아빠에게 졸랐다. 그러자 아빠도 처음에는 안된다고 했다. 하지만 아빠는 “늘 다른 사람의 처지를 돕고 서로 사랑해야 한다.”고 가르쳐 주지 않았느냐고 꼬마는 맞섰다. 그러자 아빠는 만일 가사를 돕거나 심부름을 해서 돈을 저금하면 7 만원을 모을 수 있으니까 그렇게 해 보도록 제안했다.

4 달이 지나서 꼬마의 고사리 손이 심부름과 청소등 가사를 도왔다는 수고로 벌은 돈을 선생님에게 가져 갔지만 선생님의 소개로 간 국제 우물 협회(정확한 명칭은 아님)에서는 7 만원이 우물에 박는 펌프 하나의 값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가르쳐 주었다. 그리고 실제 우물을 파기에는 2000 만원이 든다는 것을 알려 주면서 대신 이 정성을 받아 들이겠다고 했다. 그러나 어린이는 단념하지 않았다. 자기가 그 돈을 모으겠다고 했다. 엄마는 집에 돌아온 아이를 말리고 또 말렸다. 그러나 아빠는 이제부터는 부모도 도와야할 때라고 적극 아이를 돕기로 했다.

그 후에도 2000 만원이 모였을 때에도 우물 파는 기계가 없어서 다시 2 억원 돈을 모금하는 일도 있었지만 아이는 부모의 신뢰를 바탕으로 기어이 수 년 만에 이룰 수 있었다. 그리고 아프리카 우간다의 한 초등학교에 처음으로 판 우물을 통해 우간다의 어린이가 변화되고 그 기계로 전국에 계속 우물을 팔 수 있게 되어 한 나라가 생기를 되찾는 역사를 이루게 되었다. 그 어린이들에게 희망을 안겨 준 이야기는 두말할 나위도 없다.

[질문 1] 첫번째 어린이의 호기심이 제지 되었을 때 어린이는 부모의 설득에 부합되는 자기의 요구를 주장을 폈다. 그러나 다시 거절 당하게 되었는데 그 이유는 무엇인가?
[질문 2] 두번째 어린이의 요구는 처음에 거절되었지만 결국 라이언의 요청은 부모에 의해 받아 들여지게 되었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질문 3] 두 어린이의 경험한 결과의 차이는 무엇이며 왜 그러한 결과가 일어나게 되었는가?
[질문 4] 부모가 자기의 잘못이 있음을 알았을 때 취하는 행동이 낳는 결과는 어떠한 영향을 가져오는가?


전철에서 생긴 일

그리 붐비지 않는 전철에서 한 꼬마 여자애와 아빠가 자리를 잡았다. 꼬마 아이는 3 살이나 4 살 정도로 그냥 조용히 의자에 앉아 있는 아빠와는 달리 가만히 앉아 있기가 재미 없었는지 신문만 보고 있는 아빠의 주위를 요리조리 돌아다니면서 놀게 되었다. 그러자 반대편에서 만화책을 보고 있던 한 초등학교 남학생이 이 꼬마 아이를 조용히 하라고 나무라기 시작하는 것이 아닌가! 그래도 아랑곳하지 않고 놀자 급기야는 이 사내 아이가 여자 애를 한대 때리게 되었다. 얼굴도 모르는 녀석이 자기를 때렸다는 설움과 아픔 속에 아이는 아빠에게 달려와서 그 울음에 대한 되갚음을 탄원하였다. “아빠, 쟤 한대 때려줘. 잉, 잉.”

사태가 이쯤 되면 아이 싸움이 어른 싸움으로 번지게 되려나. 이 전철 안에서 애들끼리 일어난 문제를 가지고 어른들이 나서서 어떻게 뒷수습을 하게 될까? 아니면 이 난국을 그냥 묻어 두게 될 때 서러움을 풀어 달라고 호소하는 아이는 어떻게 해결함을 받을 수 있단 말인가?

신문에 열중하였던 아빠는 대수롭지 않은 듯이 “네가 가서 한 대 때리고 와.”라고 한마디 해주었다. 귀여운 딸의 기대와는 거리가 먼 답변이었다. 

‘내가 때릴 수 있었다면 처음부터 맞지도 않았을 뿐더러 아빠한테도 때려 달라고 울지도 않을 텐데 아빠는 지금 내 사정을 조금도 모르시나봐.’
‘한번 일어서면 앉은 자리를 빼앗기는 것이 전철 안에서의 힘의 원리인데 이 자리를 일어서면 그 다음부터는 서서 가야 되쟎아!’

아빠에게 매달리며 가서 때려 달라고 청원해도 아빠는 자리를 뜨려고 하지도 않았다. 그런데 아빠는 신문을 접어 두고 사랑스러운 딸에게 부드럽고 힘있는 목소리로 “내가 보고 있을 테니까 네가 가서 시컨 한대 때리고 와.” 라고 말하는게 아닌가!

순간 아빠의 옆 자리에 앉아 있던 나의 머리 속에 한 줄기의 번개가 치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내가 생각했던 아빠의 반응과는 달랐다. 아이의 문제를 그냥 내버려 두는 것도 아니고 자신이 대신 하는 것도 아니고 응원하겠으니 직접 해 보도록 하는 것이었다. 다행히 사내 아이는 혼자 있었고 부모랑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렇다면 이 꼬마가 어떻게 할 것인가 호기심이 생기는 나로서도 아빠의 편이 되어 꼬마를 응원하기로 했다.

“아저씨도 보고 있을 테니까 걱정 말고 해 봐라.”

머뭇거리던 아이는 용기를 얻고 두근 거리는 가슴을 작은 주먹으로 가리면서 사내애에게 가서 있는 힘껏 때리면서 방어하는 아이의 역습을 당하기도 하였지만 의기양양하게 돌아 왔다. 한 대 때리기 보다는 두 대 맞고 온 것 같은데 그래도 아이는 아빠에게 웃음을 보여 주었다. 아이의 마음이 승리의 작은 기쁨으로 가득한 것을 확인한 아빠는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무릎에 앉히우고 그 다음 정거장이 되어 목적지를 향해 걸음을 내디뎠다.


[질문 5] 딸의 아빠가 아이에게 직접 때리고 오라고 할 때 아이는 왜 가지 못하고 있었을까?
[질문 6] 부모가 자녀의 어려움에 관여하지 않고 버려두는 것 처럼 보이지만 이 아빠의 경우는 어떤 행동을 취했는가?
by 금메달.아빠 on 2010. 12. 13. 00: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