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치원 운동회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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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장 체조

10월1일 토요일 오전 9시 30분, 얼떨결에 시작된 유치원 운동회에 관중석에 자리도 잡기 전에 체조가 시작되었다. 비교적 늦게 도착한 큰딸 진노스케(티격이)가 같은 반 아이들의 맨 뒤에 줄서 있는 것을 확인하기가 무섭게 어디론가 다른 아이들과 같이 걸어가고 있는 것이다. 시야에서 사라지기 전에 얼른 사진기 셔터를 누르고 보니 어느새 유치원생들의 앞자리에 와 있었다. 아마도 고학년 반 아이들은 앞에 나와서 체조 인도를 하기로 되어 있는가 보다.

무슨 디즈니 체조라나 하는 만화 영화 음악에 맞추어 체조를 하는데, 중간에 메리 포핀스에 나오는 spoonful of sugar 음악도 나왔고 꽤나 긴 음악에 맞추어 체조가 진행되었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 고학년 반 아이들이 다 등장하는 것이 아니라 몇몇 원아들만 나와서 체조를 인도하고 있었다. 운동회가 있기 전날 큰딸이 집에서 연습을 하고 있더니 아마 앞에 나와서 하기로 되어 그랬나 보다. 열심히 손을 들었다 내렸다하며 체조하는 모습이 대견하구나.

모자 뺏기

아빠의 등에 업혀서 상대의 모자를 뺏는 경기가 진행되었다. 업기라면 평소에 단련된 솜씨로 자신 있는 경기다. 문제는 한 손을 놓고 상대 모자를 집어 들어야 하는데, 이것이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왼손은 아빠 얼굴을 붙들고 오른손은 모자를 붙들고 있다보니 아무도 빼앗기지도 않고 빼앗지도 못하고 있는 것이다. 아빠들만 이리 저리 뛰고 공격하러 갔다가 도망하러 피했지만 정작 등에 업힌 아이들은 등에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꼭 붙어 있었다. 이렇게 허탈할 수가.

다행히 우리가 속한 팀이 모자 두개를 빼앗고 아무도 뺏기지 않아서 이겼다. 그리고 아이를 업고 뛰던 후유증으로 오늘도 양팔이 후들 후들 떨린다.

줄다리기

줄다리기는 순수히 부모들이 벌이는 경기다. 우리가 하기 앞서 다른 두 팀이 줄다리기를 했는데, 무승부로 끝나버렸다. 가만히 보니 아무도 영차, 영차의 구령을 붙이지 않았다. 그래서 내가 속한 차례에서는 큰소리로 구령을 붙여가면서 힘을 합치기로 했다. 처음에는 아무도 영차를 안하더니 --- 사실 끝까지 아무도 안한 것 같기는 하지만 --- 서너 차례가 지나서는 힘을 모아 상대편을 이기게 되었다.

과연 영치기 영차의 효과는 있었나 모르겠다. 최소한 분위기를 살리는데는 기여했지 않았을까 한다.

릴레이 계주

진노스케가 뛴 순서는 3번째였다. 앞의 두 어린이가 느려서 티격이는 4명중 4번째로 출발하게 되었다. 혼자 늦게 출발하였지만, 어디선가 누군가 우리 딸을 응원하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사진을 찍느라 바빠서 응원하지도 못했는데 누군가 응원을 해준 것이다. 트랙을 돌아왔을 때는 거의 3번째로 들어왔다. 그리고 그후 5명 정도가 뛰어 마지막에는 우리 딸이 속한 팀이 역전으로 1등으로 들어왔다. 아주 신이난 것이다. 아빠는 아까 응원을 못한 것을 한꺼번에 몰아서 뜨거운 박수를 보냈다. 1등이어서 신이난 아이들도 잘했고, 각자 열심히 뛰는 아이들이 대견하고 훌륭한 것이다. 이 모든 아이들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은 것이다.

한 해동안 건강하게 자라고 내년에 초등학교에 들어갈 만큼 자란 아이를 보니 고맙고, 아이들을 기르느라 수고한 아기 엄마에게, 이날도 도시락을 정성스럽게 싼 아내에게, 모두 수고했고 고맙고 사랑한다.

밥만 먹고 등에 업어준 아빠가
by 금메달.아빠 on 2011. 10. 4. 01: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