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지며리, 터울거리며, 빛저운 삶을 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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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생 때의 일이다. 100주년 기념 전시회를 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기억한다. 가훈을 조사한 적이 있는데 당시 우리집에는 가훈을 따로 가지지 않았으므로 혼자서 생각하던 가훈을 지어서 제출했었다. 그러자 며칠후 담임선생님이 우리집 가훈이 멋있으니 전시회에 출품하라고 하셨다. ‘갑자기 웬 전시?’ 사실 관계를 말씀 드려도 담임선생님은 가훈 족자를 만들어서 내면 된다고 하셨다.

그래서 수업이 끝나고 서예 학원에 찾아가서 사정을 말하고 글씨를 써 달라고 부탁하였다. 학원 강사가 조금 떨떠름하면서도 간곡한 부탁을 들어 주었고 그 길로 표구집에 가서 비단 족자를 만들어 달라고 하였다. 원래 글씨를 세로로 쓰면서 약간 줄 간격이 안 맞게 되었지만 다시 써 달라고 할 수 없이 표구하여 전시회에 제출했다.

담임선생님은 매우 좋아하셨다. 독특한 가훈이라면서 좋아하시기도 했고, 뜻이 의미있다고 인정해 주셨다. 순우리말로 지어진 당시의 가훈은 내가 결혼하여 가정을 이루면 가훈으로 정하려고 했던 것이다.

오늘도 지며리

터울거리며

빛저운 삶을 살리라

순우리말을 좋아했기 때문에 국어사전을 찾을 때마다 한두 단어씩 적어두었던 어휘를 발휘하느라 다소 고풍스러운 문장이 되기도 했지만 전시회가 끝나고도 10년 이상은 집에 걸어 두었다. 얼떨결에 아버지도 가훈으로 채택해 주셨다.

물론 지금은 결혼하여 가정을 이루었고 이 문장을 가훈으로 사용하고 있지는 않다. 어딘가에 보관하고 있을 족자의 행방은 잘 모르겠고 기억 속에 선명하게 남아있다. 만일 이 족자를 보고 기억하는 친구가 있다면 1985년 고등학생 시절 우리 반 동창뿐일 것이다.

지금 가훈은 짧고 의미 심장한 교훈을 담고 있다.

믿어 순종하자.

성경 구절이다.

by 금메달.아빠 on 2014. 6. 27. 02: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