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이야기 - 100점이 그렇게 기분 좋았던 날
대학에서 처음 중간고사를 보는 날이 다가왔다. 일반물리(University Physics) 과목이었는데 책뒤 에 있던 연습문제를 몇 개 정도 풀어보고 시험에 임하게 되었다. 시험 문제는 평이했다고 생각하는데 마지막 문제는 점전하의 분포가 아닌 연속 전하량을 가지는 분포를 구하는 문제였다. 강의 시간에는 점 전하만을 배웠으므로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는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거리에 따라 밀도가 함수로 표시되는 것은 적분법을 사용하는 것이 응용이었으므로 적분을 계산하여 답안지를 작성하였다.
며칠 후 일반물리 실험 시간에 조교가 중간고사 점수 발표를 하는데 공대에서 2명의 만점이 있다는 것을 먼저 서두에 알리고 그 중 한 명이 이 강의실에 있다는 것이다. 나는 그다지 잘 보았다고 생각하지 않았으므로 만점 맞은 친구가 부럽고 궁금했다.
원시적인 방법이긴 하지만 한 명 한 명씩 호명하면서 점수를 불러 주는데 내 앞 3번째 친구가 95점을 맞았다! 그 때까지 30, 40 을 부르다가 9 를 앞자리에 부르는 것은 처음이었다! 실험실이 순식간에 환호로 흔들리는 듯 했다. 과연 나는 몇 점이나 맞았을까?
드디어 내 점수를 부르려다가 조교 선생님(대학원생이니 선배인데 보통 조교님)이 잠시 호명하더니 내 얼굴이 누구냐고 확인하는 것이다. 평소 실험을 재미있게 하던 실험 조였던 것을 확인하더니 납득이 간다는 표정으로 점수를 불러 주었다. 100 점!
이번에는 실험실 책상이 다 부서지는 줄 알았다. 어디선가 돌개바람이 불어와 우리 과 학생을 모두 날려 보낼 것 같았다. 그렇게 기분 좋았던 100점은 처음이었다! 어떤 친구는 고등학교에서도 물리 과목 100점은 받아본 적이 없다는 둥, 마지막 문제는 배우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풀었냐는 둥, 며칠 동안은 질문 세례를 많이 받았다.
그런 기분과 기쁨을 대학 졸업할 때까지 유지하기는 불가능했다. 하지만 가끔 그 때 기억을 되살려 보면 지금도 기분이 좋아진다. 조그마한 성공담이 두고 두고 교훈을 주고 있다. 그리고 지금도 어려운 일이 있을 때면 그런 기억들을 꺼내어 기도할 때 사용하곤 한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것.
1987년의 일이었으니 조금 더 있으면 30년이 되어 가는 일이다. 그런데도 이렇게 생생하게 기억하는 것을 보면 많이 우려 먹은 이야기로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