훌륭한 선생님 아래에서 훌륭한 학생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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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생 때에 주요과목의 선생님 중에서 별로 인기가 없는 분이 계셨다. 어떤 이유에서인지 동기생들은 이 수학 선생님께 고약한 별명을 붙였는데, 한번은 담임 선생님이 이 분에 대한 별명을 어쩌다가 듣게 되었다. 담임 선생님은 매우 난처하고도 못마땅해 하셨는데 아마도 그후에 수학 선생님께 알려드린 것 같다.

그러던 어느날, 어떤 일이 계기가 되어 이야기가 시작되었는지는 기억하지 못한다. 1984년의 일이었으니 벌써 27년도 넘은 일이니 이야기의 배경은 기억하지 못하지만 수학 선생님은 평소의 신념을 수업 시간에 의연하게 말씀하셨다. '선생님을 훌륭하게 여기고 잘 배우는 학생은 훌륭한 학생이다. 자기가 다니고 있는 학교를 똥통 학교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자기가 뭐가 됩니까? 자기를 똥으로 생각하는 것이 되지요? 그러나 자기 학교를 좋은 학교라고 생각하고 열심히 배우고, 선생님들을 휼륭한 선생님으로 믿고 열심히 배우면 그 제자가 훌륭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교실은 잠시 숙연해 졌으나 이분의 말씀을 귀담아 들었을 친구들이 얼마나 있을지는 지금도 해결되지 않은 의문이다. "배재"는 배양영재라고 했던가. 이 선생님은 성함이 여자이름에 많은 이름인 점에서도 독특하신 분이었고 수업 방식에 있어서도 약간은 독특한 점이 있었다. 무엇보다 칠판에 쓰시는 판서가 작은 글씨였는데 증명할 문제가 아무리 많아도 칠판을 지우고 다시 쓰는 일이 없었다. 왜냐하면 작게 쓰시는 이유가 칠판을 지우지 않기 위해서라고 하셨다. 그리고 출석점검은 항상 한명 한명 신중하게 부르셨다. 그래서 어떤 친구들은 수학 선생님이 수업하기 싫어서 저렇게 느긋하게 출석을 부르고 수업시간에는 책도 안피고 가르친다고 불만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업시간에 조는 학생들에게는 매서운 꾸지람이 살벌한 분위기였다.

어쩌면 이 수학 선생님을 좋아하는 학생들은 거의 없었던 것 같다. 그래도 나(아빠)는 고등학교 3년간 수학 선생님께 항상 경청하기로 했다.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바도 있고, 비슷한 이야기를 중학생 때에도 음악 선생님으로 부터 들은 것이 있었서 였다. 그러는 동안에 도서관에 비치되어 있던 대학 입시문제 상해(이 책은 일본 대학 입시문제집이었다)를 가장 여러번 대출해서 보신 분이 바로 이 수학 선생님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평소에는 가르치는 둥 마는 둥, 실력이 있는지 없는지 수업시간에는 강의보다 인성 교육이 더 비중을 차지할 때도 많지만, 사실은 실력자이시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연세가 지긋하신 관계로 수업시간에 여유가 생기신 것인지, 아니면 공식 한가지를 가르치는 것 보다 수업 태도를 가르쳐 주시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신지에 대해서는 직접 여쭈어 본적이 없어서 알수 없다. 그렇지만 교재에 나오는 수학 공식 증명을 한 개 더 기억하는 것 보다도 이 분의 가르침은 실제적인 도움이 되었다. 나도 아이들에게 "훌륭한 아빠는 못되지만 아이들이 엄마 아빠를 훌륭한 엄마 아빠로 여기고" 자랄 수 있도록 가르치고 있다. 즉 우리 아이들이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아이들이라고 칭찬하고 사랑하는 것이다.


졸업이 가까운 고등학교 3학년 때에는 수학 선생님이 담임 반도 아니었던 나를 아주 아껴 주셨는데, 졸업 후에 한번도 뵌 일이 없다. 여름 방학 때 담임 선생님께 안부 편지로 편지지 10장의 장문 편지를 썼다는 이야기를 우연히 들으셨던 수학 선생님은 10장이 아니라 1장짜리라도 좋으니 나에게도 써보라고 하셨는데, 방학이 끝났다는 핑계로 엽서도 보낸 적이 없었다. 지금도 건강하게 살아 계시다면, 편지로라도 삼가 아뢰고 싶다.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선생님"
by 금메달.아빠 on 2011. 6. 30. 00: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