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은 망가뜨리고 아빠는 고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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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어렸을 때는 집에 남아나는 물건이 거의 없었다. 형들이 가지고 놀다가 망가뜨린 시계, 전축, 라디오 등등 아들만 사는 집에 제품 수명대로 쓰는 물건이 없었다. 어머니가 쓰는 재봉틀, 전기 다리미는 20년 이상을 쓴 유일한 물건이고 벽시계, 탁상 시계 할 것 없이 모조리 금새 고장났다.

어느날, 그 와중에 --- 남아있는 물건이 별로 없는 와중에 --- 벽시계에 손을 댔다. 1970년대 후반에 괘종시계로서 날짜가 돌아가고 태엽으로 구동하는 시계였는데, 시계가 느려지면 좌우 태엽을 형들끼리 경쟁적으로 감아 주곤 했었다. 그날은 형들이 학교에 가고 아직 돌아 오지 않은 시간에 나 혼자서 벽시계를 벽에서 떼어 왜 시계가 느려지는지 연구하려고 했었다. (말이 좋아 연구지, 그냥 가지고 놀고 싶었을 것이다.)

가장 궁금했던 것은 왜 똑딱 소리가 크게 나는지 그 원인을 캐내려고 숫자판을 떼내고 추가 매달려 있는 부분을 어떻게 하다가 그만 강철로 되어 있던 흔들이 부분이 두동강이 났다!

졸지에 벽시계가 돌아오지 않는 다리를 건너가게 된 것이다. 하루 종일 공포와 두근 거림으로 아버지가 오시기를 기다리지 않으면 안되었는데, 의외로 별일 없이 지나갔다. 그냥 피식 웃으신 것으로 기억한다.

형들도 그랬고, 나도 그랬지만, 집에서 무언가 가지고 놀다가 고장낸 것으로 혼난 기억은 없다. 아이들은 망기기 (망가뜨리기의 서울 사투리인 것 같음) 마련이라는 것이 가정의 통념이었다. 많이 망기면 많이 고칠 줄 알게 된다는 것이 마치 정설로 받아들여지는 분위기였기 때문에, 어려서 망기면, 이것은 일종의 투자라는 것이 형제들끼리 주고받은 덕담이었다.

(부러진 나무 조각)



(목공풀로 붙인 후)

세월은 흘렀다. 이제는 내가 아빠가 되어 보니까 딸아이는 그렇지 않지만, 아들은 뭐든지 궁금하고 호기심이 많고 손이 정교하지 않기 때문에 아들 손에 들어가면 고장이 잘 난다. 얼마전에 자전거 바퀴를 고치고 고장낸 DVD를 고쳐 놓았더니 오늘은 소꼽장난용 조리대를 부러뜨려 놓고 아빠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래 놓고서 누가 부러뜨렸느냐고 묻자, 아이들이 입을 모아 외쳤다.

"아빠가 고쳐줘!"
나도 모르게 피식 웃었다. "물론이지"
by 금메달.아빠 on 2011. 3. 9. 01: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