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따라 도서관에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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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학교(초등학교)를 세차례나 전학했던 나는 별로 친구가 없었다. 4학년때는 이사했기 때문에 불가피하게 전학한 것이지만 5학년이 되면서의 두번째 전학은 신설 국민학교가 생기면서 거리에 의해 의사와는 상관없이 전학하게 된 것이다.

중학생이 되어보니 전학하기 전의 같은 반 친구들이 다시 중학교에서 만나게 된 것이 반가왔다. 4학년 때 같은 반의 아주 친하였던 친구가 다시 같은 반이 된 것은 반가왔던 일이다. 내 뒷자리에 앉은 그 친구는 전학왔던 나에게 친절하게 해주었을 뿐 아니라, 칠판이 잘 안보여서 선생님의 글씨 쓰신 것을 받아 적으려 할 때 자주 공책을 보여 주었다. 덕분에 수업 시간에 자주 뒤를 돌아 본다고 선생님이 주의를 준적도 많았다.

이 친구가 특별활동으로 독서반에 들자고 하였고 나는 좋다고 제안을 받아들였다. 독서반 지도 교사는 영어 과목 선생님이었는데, 이분은 도서관의 사서는 아니지만 도서관의 책을 관리하는 업무가 맡고 계셨다. 독서반 학생들 중에서 도서관 사서를 해보고 싶은 학생을 자원 받는 일이 있었다. 이때 이 친구가 도서관의 사서를 해보자고 권했다. 물론, 좋다고 찬성하였다.

중학교도 신설학교이다보니 학교에는 도서관이 제대로 되어 있지 않았고 장서량도 얼마 없었다. 4층 한쪽 교실을 책꽂이만 가져다 놓았을 뿐 책은 정리해가는 중이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이 친구와는 사서를 맡은 요일이 달랐다. 친구와 같이 해보자고 한 일인데 이 무슨 운명의 장난이란 말인가!

사실 형들이 학교에서 선도부를 하거나 매점에서 일했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나도 중학교에 가면 재미있는 일을 해보고 싶었던 것인데, 사서를 하는 일은 그다지 재미가 없었다. 폐가식 도서관에서 책을 꺼내 달라고 하면 책을 꺼내주는 일인데, 남녀 공학 중학교여서 여학생들도 와서 책을 달라고 하면, 여간 불편한게 아니었다.

한번은 한 친구가 학교에 책을 대량으로 기증하는 일이 있었다. 아마도 1000권을 기증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당시 갑작스런 책의 증가로 사서로 일하던 학생들은 매일 저녁에 "아무개 기증" 도장을 찍고 책을 분류하였다. 책이 늘어나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우리를 귀찮게 하는 친구가 누군지 아주 괘씸했다. 이름은 알고 있지만, 얼굴도 모르는 친구였다. 그런데, 놀랍게도 아버지는 그 친구의 할아버지를 알고 계셨다. 유명 출판사의 사장님이라는 것이다.

여차여차 해서 나중에 그 기증자 친구를 만나서 알게 되었고 집에도 놀러 갔었다. 그제껏 내가 가본 집에서 가장 큰 집이었다. 대문에서부터 안내를 받지 않으면 길을 잃어버릴만한 정원과 집의 규모였다. 그 친구의 집에서 담너머는 고등학교가 있었는데 고등학교의 운동장보다 친구 집의 정원이 넓었다.(이 농담을 알아 들을 수 있는 사람이라면 친구 본인이거나 이 친구의 집에 드나든 적이 있는 친구의 친구일 것이다. 적어도 이 고등학교를 다닌 사람이라면, 농담의 고등학교가 어딘지도 알것이다.) 책을 기증한 친구는 나중에 외국어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하여 외교관을 지망하였는데, 지금쯤은 외교관이 되어있을지 모르겠다.

가끔 에피소드가 있어서 아주 재미없던 것이라고는 볼수 없지만, 사서라는 업무는 대체적으로 재미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도서관에서 일하다가 다양한 분야의 책을 폭넓게 읽게 된 것과 책을 좋아하게 된 것도 이 때의 덕분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친구따라 강남에 간다는 말이 있다. 나는 친구따라 도서관에 가게 된 것이다. 대학에 가서도 이 친구는 전자공학을 전공하고 같은 공대에서 자주 만나게 되었지만 졸업한 이후에는 어떻게 되었는지 궁금하다. 결혼했다면 아이들도 꽤 컸을 텐데, 워낙 얼굴이 하얗고 미남이었고 친구들 사이에서 천재였기 때문에 아이들도 야무질 것이다.

이 친구를 다시 만나게 되면,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다. 벌써 대학생이었던 것이 20년전이니까 그동안 할 이야기가 많다. 좋은 소식을 전해주고 싶다.
by 금메달.아빠 on 2011. 4. 25. 0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