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제 몸으로 배운 것이 오래간다(2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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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는 지난 1994년 여름 방학기간에 있었던 일이다. 대학원 실험실에 후배 대학원생들이 배치되어 들어왔다. 지난 해 만들던 온도조절기는 그만 만들어도 될 것 같았지만 새로 들어온 학생들에게도 같은 과제가 내려졌다. 경험자로서 선배로서 후배들의 질문에 답변을 해주고 싶었지만, 사실 나는 바빠서 잘 도와 주지 못했다. 전년도에 그렸던 기판도를 보여 주고 단지 참고해도 좋다고 했는데 이 친구들은 굉장한 열심으로 선배들이 한달간 허덕이며 만들었던 온도조절기를 일주일만에 다 만들어 버렸다. 전년도에 한달 걸린 것이 약간 비정상적인 것이긴 한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로 들어온 대학원생들은 매우 열심이었다.

한번은 한 후배가 나에게 전기 콘센트를 어떻게 이어 주느냐고 물었다. 이런 질문은 매우 초보적인 질문이었기 때문에 우문에 현답을 할 수 없어서 우문우답으로 대답했다.
"잘 이어야지."
"어떻게 하는 것이 잘 잇는 거예요?" --- 남학생들은 한 학년만 달라도 깍듯이 경어를 쓰는 것이 보통이었다.
"정성스럽게 잘 이어 주면 되지."
"장난치지 말고 가르쳐 줘요."

이즘 되면 그의 질문은 장난 질문이 아닌것을 알게 되었다. 전기 콘센트를 열어서 전선을 이어본 적이 한번도 없었고 집에서도 해본 적이 없었다는 것이다. 대개 전기 콘센트가 일체형으로 나오기 때문에 고장나지 않으면 전선을 이을 일도 없기는 하다. 그래도 그는 좀 심했다.

우리집은 어렸을 때 가난해서 콘센트가 수시로 고장났고 수시로 나사를 풀어서 전선을 이어주었다. 정전되면 두꺼비가 산다는 두꺼비집을 수시로 열어 보고 퓨즈를 갈아 주었는데, 퓨즈의 한쪽은 철사를 감아서 쓰기도 했다. 적산 전력계의 납 봉인을 잘못만져서 100볼트 전기에 감전된 적도 한번 있었다. 그러다 보니 콘센트 고치는 것은 와이어 스트립퍼가 없이 가위, 칼, 펜치 심지어는 자기 이로 물어서도 전선의 피복을 벗겨낼 수 있다.

지금은 세월이 흘러 집에 있는 가전제품이나 온풍기등도 가끔 고장나면 뜯어 볼 때가 있는데 대개는 고쳐진다. 특별히 학원에서 배웠다기 보다는 몸으로 하다보니 배우게 된 것이다.

얼마전 신문을 보니, 입시를 대비하여 논술을 잘하려면 독서가 중요하다고 하여 독서 학원에 보내는 것이 유행이라고 들었다. 내생각에는 독서 학원에서 "독서에 대하여" 배우는 것 보다 그 시간에 독서를 즐기는 것이 더 유익하게 배우리라고 보는데, 젊은 엄마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가 보다.


뭐니뭐니 해도 몸으로 배운 것이 오래 남고 자기 것이 된다.
by 금메달.아빠 on 2011. 12. 27. 23: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