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ttel, Thermal Physics (에피소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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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역학 이야기를 하다보면 꼭 빼놓을 수 없는 에피소드가 있다. 이건 열역학 자체의 이야기라기 보다는 열역학 책에 얽힌 이야기이다. 열역학으로 유명한 책은 키텔(Kittel)의 Thermal Physics 2e(열물리)이다. 두번째 저자도 있지만 첫번째 저자인 키텔을 보통 부른다. 열물리에 관한 책도 많아서 다양한 저자의 명저가 있지만 아무튼 내가 배운 책은 Kittel이었다.

때는 1994년 어느날 자정이 가까운 시간, 하숙집에서 잠자리에 누웠다. 같은 하숙집에 사는 물리교육과 후배가 조용히 찾아와서 간절히 부탁하는 것이 있었다. 내일 아침에 열물리 시험이 있는데 도와달라는 부탁이었는데, 사정은 매우 딱한 처지였다. 교생실습을 하느라 강의에 들어가지 못하고 시험일자가 닥쳐왔는데 한달 동안 강의에 들어가지 못했으므로 이밤에 한달간의 수업 내용을 가르쳐 달라는 것이었다. 성실하고 훌륭한 후배였기 때문에 도와 주고는 싶지만 이미 시간은 자정에 가깝고 아침 시험시간은 (아마도) 10시였던 것이다. 밤새도록 설명을 하고 이른바 대학생 과외를 해서라도 도와주고 싶어도 시간이 부족하며, 설령 열심히 설명해서 알아들었다고 해도 시험 시간에 졸려서 시험을 망칠 것으로 조언 했다. 즉 도와줄 방법이 없다는 것을 인정해 주기를 바랬다.

그런데 이 후배는 막무가네였다. 낮시간에는 여러가지 일이 있었고 늦은 시간이지만,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놓치지 않으려는 열정 과 믿음에 내가 거들어 주기로 했다. 사실 내가 물리교육학과를 나온 것도 아니고 물리교육학과에서 사용한 강의 교재는 내가 공부했던 책도 아니었다. 시험 범위를 듣자하니 Kittel에 나오는 부분과 비슷한 범위였기에 우선 Kittel 책과 연습문제 풀이를 후배에게 주면서 문제 풀이를 보고 외도록 했다. 그러나 연습문제 풀이가 워낙 많은 수여서 중요 예상 문제를 짚어주기로 했다. 시험문제는 5문제 정도가 출제되니까 2배수인 10문제를 선별하고 여력이 되면 15문제까지 공부하도록 했던 것이다. 그중에 하나가 Zipper Problem이라는 문제도 있었다.

강의교재가 아닌 책의 연습문제만 외다시피 풀어보고 시험을 치른 후배는 과연 어떤 결과를 얻었을까? 여름 방학이 되어 그가 성적표를 받아보았을 때는 후배의 기억에 좀처럼 잊을수 없는 신나고 귀중한 경험을 하게 되었다는 것만을 기록으로 남겨 두어야겠다. 내가 짚어준 예상 문제가 적중한 것은 물론이요, 개념을 응용해서 풀수 있었던 시험 문제를 모두 풀었다는 것은 후배의 기억에 그다지 큰 비중을 차지하지는 못하였다. 불가능해 보이는 상황에서 그가 포기하지 않고 믿음으로 시도했던 것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과 기쁨이 가장 값진 것이었다.
(코스모스: 올 가을은 코스모스를 보러 가지 못해서 아쉬웠는데 지난 번 식물원에서 코스모스를 보게 되어 얼마나 반가운지 몰랐다.)

나도 이 일을 통해 심혈을 기울여 예상 문제를 짚어주는 것 보다도 더 도와주어야 할 중요한 것은 우리의 삶의 동기(믿음)라는 것을 배우게 되었다. 내가 공부하다가 연습장에 풀어둔 Kittel의 연습문제 풀이는 그후 대학원 준비하던 후배에게 주었고 지금은 누군가 가지고 있을지 아니면 버려졌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그 문제 풀이는 적어도 후배와 나에게 에피소드를 통해 중요한 교훈을 배울수 있게 해준 점에서 충분히 가치를 발휘했다.
by 금메달.아빠 on 2011. 1. 14. 00: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