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kins, Physical Chemistry: 정든 친구를 떠나 보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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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리화학 과목은 물리 과목이라기 보다는 화학 과목이다. 물리학과에서는 물리화학을 가르치거나 배우지 않고 화학과의 전공이다. 내가 아는 화학과 선배도 물리화학을 전공한 경우다. 공대에서도 물리화학을 배우기도 한다.

학부때 가장 어려운 과목이 열역학이기는 했지만 학부 2학년때 갑자기 어려워진 과목으로 이름을 떨친 과목은 바로 1988년에 두학기 동안 배운 물리화학(Physical Chemistry)였다. 다루는 내용도 방대했거니와 강의교재로 사용된 Atkins의 물리화학 교재는 영국 사람이 쓴 책이어서 문체가 영국식 영어로 되어 있었다. 책 내용도 어려운데 강의 서적이 어려워서 친구들 모두 어려워했던 과목이다. 강의하시는 교수님은 존경하던 교수님 중의 한 분이신데, 방대한 양을 가르쳐 주시느라 항상 쉬는 시간을 쪼개서라도 열강을 하셨다.

대학 교재의 대부분이 그렇듯이 이책에도 연습문제는 나오지만 풀이집이 없었는데, 연습문제를 풀어보는 것이 시험문제와 무관했기 때문에 힘들여서 연습문제를 풀어보는 친구들은 거의 없었다. 그러던 중 한번은 양자역학과 X-ray 분광에 관한 시험 범위를 공부할 때가 있었다. 어차피 시험 문제가 교재의 연습문제에서 출제된 적이 없던 것을 알면서도 그렇다고 특별히 다른 것을 공부해 본다고 해도 다를 바가 없기 때문에 연습문제를 위주로 시험공부를 해두었다. 그리고 시험 직전에 친구들과 잡담을 하던 중에 나는 연습 문제만 간신히 풀어보았다고 했더니, 한 친구는 나를 놀렸대며 야유했다. 지금까지 연습문제에서 시험이 난적이 없는데 연습문제를 풀어본 것은 시간 낭비라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기본기에 충실하면 응용문제를 풀수 있으므로 낭비는 아니라고 반론했다.

막상 시험지를 받아들고 나서 나를 야유했던 친구는 얼굴이 굳어졌다. 이번에는 예외적으로 시험문제가 모두 연습문제에서 출제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요행을 바라는 것은 아니지만 기본기를 묻는 문제가 나와서 나는 체면을 유지할 수 있었다.

20년 가까이 가지고 있던 때묻은 이 책을 아쉬워 하면서 얼마전에 버리게 되었다. 오랫동안 열어보지 않았더니 곰팡이가 나서 냄새가 났다. 버리기 전에 다시 한번 훑어 보았다. 많은 학생들을 울고 웃기게 하던 정든 책을 이제는 다시 펴볼 일이 없다고 생각하니 정든 친구와 작별하는 기분이었다.
by 금메달.아빠 on 2011. 1. 16. 00: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