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은 아빠와 놀면서 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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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이맘때면 굳이 휴가가 아니어도 바닷가에 놀러갔다. 올해도 예외를 두지 않고 바닷가에 가서 발을 물에 담그고 발바닥을 뜨거운 모래로 달구어 보려고 했다.

며칠전부터 바다에 간다는 소식을 듣고 아이들은 굉장히 기대를 했다. 작년에 갔던 사진을 보고서 기억하고 있는지, 아이들도 옛날에 바닷가에 갔다는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아이들에게 있어서도 "옛날"이라는 말이 통하는데 아이들은 그저 오래된 일을 숫자로 환산하지 못할 때는 무조건 옛날이라고 지칭하는 습관이 있다. 그래서인지 이번에는 준비를 단단히 하고 출발하였다. 7살 딸아이는 이번 한번 입으려고 수영복을 샀다. 아들은 굳이 수영복을 사지 않고 그냥 자연스러운 속옷차림으로 버티겠다고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튜브는 각각 마음에 드는 것으로 하나씩 골라 잡았다. 비교적 까다로운 기호를 가진 딸은 가게를 세군데 돌아 다니고서야 마음에 드는 것을 고를 수 있었다. (사실은 두군데만 다니고 세번째 가게는 지친 아이는 집에 두고 엄마 혼자서 사오고 예쁜 것이라고 설득했다.)

바닷가에 가는 동안 약간의 보슬비가 내리고 구름이 끼게 되어 뜨거운 날씨는 피할 수 있었다. 출렁이는 파도 물결에 발을 담그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었지만, 물속에 들어가는 것은 의외로 아들이 아니라 딸 아이였다. 큰아이가 물속에 들어가서 튜브를 끼고 돌아다니고 떠다니는 미역을 들어 올리고, 마음껏 놀아도 물결에 겁을 내고 작은 아이는 무릎 이상 물속에 들어가지 못하고 모래만 밟고 다녔다. 제 누이가 몇번이고 재미있으니 들어 오라고 꼬셔도 태격이는 막무가내로 응석을 떠나지 않았다.

덕분에 큰 아이만 열심히 자맥질을 하고 다리를 붙들어 주면서 헤엄도 치고 물장구도 치더니 제법 발장구만으로 물놀이를 할 줄 알게 되었다. 나중에는 아빠가 업고 수영을 하기도 하고 안고 수영을 하기도 하고 --- 튜브를 사용한 채 --- 수중 보행을 아마도 1-2시간은 한 것 같다.

이렇게 그냥 돌아가려고 생각하니, 영 마음이 가볍지 않다. 아들에게 재미난 물놀이도 못하고 돌아가서야 말이 되겠는가! 그래서 쉬는 척 모래 밭에 앉아 있다가 아들을 번쩍 들어다가 1미터 수심으로 얼른 들어갔다. 무섭다고 울고 서러워하는 아들이 조금은 불쌍하지만, 물속에서 깡총깡총도 하고 금새 나왔다. 잠시 쉬다가 이번에는 튜브를 뒤에서 씌운 다음에 얼른 물속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누이도 가세해서 튜브를 꼭 잡고 있으라고 하면서 물장구치는 것을 도와 주었다.

이 모든 노력은 사실상 물을 겁내는 개구장이를 즐겁게 해주지는 못했다. 물밖에서 사진을 찍던 엄마에게 하소연하자 엄마는 불쌍하니 내보내 주라고 했기 때문이다. 저녁에 개별적으로 아이들에게 물었다. 오늘 너는 뭐가 제일 재미있었니?

"아빠랑 물속에서 풍덩 풍덩 하던거요!" 짖궂은 것 같아도 아이들은 아빠와 놀면서 큰다.
by 금메달.아빠 on 2011. 8. 9. 0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