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어렸을 때는 말이지

[목차(도우미)]
요새는 초등학교에 몇명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내가(아빠가) 초등학교에 다닐 때 1970년대는 한반에 학생수가 100명이었다. 서울 시내 모든 학교가 그렇게 사람이 많았던 것은 아니겠지만, 내가 살았던 미아리라는 동네는 한반에 적어도 90명이 꽉 끼어 있었다. 나는 항상 번호가 44번 47번이어서 한 반에 몇명이었는지 대충 기억이 난다. 1학년 2학년 때는 변변한 교실에서 수업을 받지 못했다. 교실은 원래 창고를 개조한 곳으로 칠판과 책상 걸상을 빽빽이 가져다 놓아 만든 교실이었다. 비오는 날은 교실에 조명이 없어서 항상 컴컴한 가운데 수업이 진행되었다. 그런 날은 칠판이 보이지 않아서 매우 곤란한 날이었다.

창고로 만든 교실이란 것은 4학년 쯤 되어서 알게 되었다. 고학년이 되자 벽돌 건물의 교실로 배정되어 가보니 교실이 너무나 좋고 깨끗한 것이다. 왁스를 묻혀서 반질 반질하게 청소한 복도바닥도 비교할 수준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해서 창고 개조 교실이 나쁜 것만은 아니었다. 쉬는 시간 종이 치면 곧바로 실내화를 갈아 신을 필요도 없이 운동장을 가로질러 그네를 뛰어 가서 10분 간 놀다 오는 것이 가능한 것은 창고 개조 교실에 있던 우리들 뿐이었다.

그러다가 4학년 봄에 전학을 갔는데 이곳은 더 어린이들이 많은 지역이었다. 교실이 모자라서 아예 오전반 오후반으로 한 교실을 두개 반이 나누어 쓰는 것이다. 오전반 오후반이 나는 한동안 적응이 되지 않았다. 한주는 오전반 --- 이것은 익숙하다 --- 한주는 오후반이되는데 오후반이면 오전 내내 집에서 놀다가 오후에 가방을 들고 학교에 가야 하는데 아무래도 이상했다. 혹시라도 오전 오후가 바뀔까봐 월요일만 되면 긴장하고 재차 확인해야 했다.

내가 어렸을 때는 모두가 가난하고 먹을 것이 많지 않았던 시절이었다. 한 반에 100명 가까이 되어도 냉장고가 있는 집은 10집 안에 들었고 여름에 맹물 얼음을 입에 넣고 오물오물 하던 친구가 부러운 시절이었다. 당연히 가게에도 냉장고가 없어서 아이스크림, 하드바를 보관하는 커다란 직경 20센티 정도의 진공병 아이스박스가 있었다. 여기에 얼음 주머니를 위에 올려 놓아서 하드를 보관했다. 하드를 한개 사려면 풍선만한 얼음 주머니를 들어 올려서 마음에 드는 하드를 꺼내면 되었다. 하드의 종류는 대개 한종류였는데 "알밤바" 라는 이름의 하드였다. 웃기는 것은 가끔 얼음 주머니에서 물이 새기도 하는데 이 얼음 주머니는 온도를 낮추기 위하여 소금을 넣어 둔 소금물이다. 그래서 하드에 묻어 짠맛이 나기도 했다. 소금을 넣어 두면 얼음 온도가 낮아 지는 것은 고등학교 화학 시간에 배우게 되는 "몰랄 내림",  "어는 점 내림"에서 자세히 알게 된다.

과외 공부를 하던 친구들은 거의 없었다. 과외지도가 전혀 없던 것은 아니었는데, 내가 살던 집 근처에 아주머니 혼자서 딸을 키우며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과외 교실을 하던 것이다. 그 아주머니의 딸이 나와 같은 학년이었는데, 그 아이는 학교가 끝나도 엄마가 가르치는 과외 수업에 들어와야 했기 때문에 나는 항상 그 아이가 불쌍하다고 생각했다. 학교가 끝났는데도 자기 엄마가 과외 선생님이어서 하루 종일 공부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수업이 끝나면 학교 운동장에서 노는 것이 흔한 일이었다. 축구하는 친구들, 달리기, 여학생들은 하루종일 곡목을 바꿔가면서 고무줄하느라 대여섯명이 운동장에서 뛰어 놀았다. 한 때 시대를 풍미했다고도 할 수 있는 고무줄 놀이의 노래가 있었는데 그 가사는 "무찌르자 공산당...", "전우의 시체를 넘고 넘어..." 로 시작하는 노래였다. 무슨 여학생들이 군인도 아닌데 고무줄 놀이를 하면서도 공산당을 무찌르자고 했을까? 점심시간만 되면 운동장가장자리를 전부 차지하는 여학생들 입에서는 일제히 무찌르자 공산당을 불렀다. 참으로 가관이었다. 당시 무찌르자 공산당을 부르던 여학생들은 벌써 40대가 되었다. 아마도 이글을 보고 기억하는 사람이 있다면 매우 재미있을 것이다.

요새는 초등학교에서 무엇을 하며 놀고 어떤 재미로 친구들과 노는지?
우리 아이들도 재미있게 놀고 건강하게 자라거라.
by 금메달.아빠 on 2011.10.05 00:12 주요 단어: , , , , ,
  • BlogIcon Daniel Hong 2011.11.26 11:17 신고 주소 수정/삭제 답글

    오전반, 오후반 저도 생각나네요 ^^ 저 역시 월요일만 되면 오전, 오후 잘못 갈까봐 긴장하고 있었는데... 그땐 몰랐는데, 학생 수가 많아서 그렇게 운영했던거군요 ㅎ
    저는 올해 서른인데, 제가 어렸을 때에도 공 차고 놀고 야구하고 몸으로 뛰면서 많이 놀았는데... 요즘엔 거의 집에서 컴퓨터 게임을 하거나... ㅜㅜ 점점 대면 접촉이 줄어들고 동적이기보단 정적인 생활이 많은 것 같아서 마음이 좀 그러네요...

  • BlogIcon 김성일 2011.11.26 11:41 신고 주소 수정/삭제 답글

    서울은 당시에 그정도로 교실 환경이 심각했었군요.
    저는 80년대에 초등학교를 다녔는데 가장 많았던 반이 60명 정도 였거든요.

    글을 읽으면서 느낀 점이 자녀분들과 깊은 대화를 나누시는 좋은 아빠이신 것 같아서,
    읽으면서 저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졌습니다.

    좋은 블로그 감사합니다.

체크하면 비공개 댓글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