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테, 신곡 (정형시의 매력에 빠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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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곡을 읽은 것은 매우 오래전의 일이다. 그러니까 1989년 경에 열심히 읽었던 것으로 등교길에 전철에서 읽고 전철에서 감상하였기 때문에 독후감 같은 것은 남겨 두지 않았다. 그 당시 신곡은 유명한 책으로써 교양으로 읽어보려고 손에 들었던 것이다. 마침 원어를 이야기식으로 번역한 책이 아닌 시로 번역한 책이 출간되었다. 상하로 나누인 책이었는데 오랜 세월을 지내면서 책꽂이에서 비에 맞아 젖어 곰팡이가 나서 몇년 전에 작별한 책이다.

신곡을 지은 단테 알리기에리(이하 경칭없이 단테, Dante)는 베아트리체라는 여인과의 이상적인 사랑으로도 일화를 가지고 있다. 일설에 의하면 베아트리체를 몇번 만난 것도 아니면서 단테 스스로 짝사랑을 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아트리체라는 이름은 청소년, 특히 남학생들이라면 분명 한두번 쯤은 들어보았을 만한 유명인의 이름이 되었다. 지고지순의 사랑이라든가, 순수한 사랑을 논하려면 베아트리체라는 이름을 한두번은 언급하고 넘어가야 무언가 유식한 편에 속한다고 말할 수 있다.

나는 베아트리체라는 사람에 관심을 가진 것은 아니지만, 단테의 유명한 시 --- 정형시 --- 를 단지 교양으로 읽어보고자 했는데 지옥편, 연옥편, 천국편의 각각 33편 중에서 지옥편이 가장 지루하고 인내심을 필요로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흥미를 가지게 되는 부분은 신곡 전체가 완전한 정형시라는 점이다. 영시를 감상하고자 한다면 정형시의 각운과 음절수가 모두 동일하다는 것을 감상할 수 있어야 한다. 비록 번역된 시였기 때문에 원어의 음절과 각운을 감상할 수는 없었지만 우리말로 훌륭하게 번역된 시를 통해서도 정형시의 위엄을 엿볼 수 있었다.

단테가 21년간(아마도 정확한 숫자일 것이다) 지었다는 사실만으로도 대 서사시라고 할 수 있는데, 이 시를 읽고 나에게는 우리말로도 방대한 정형시를 발굴해 보고자하는 시심이 생기게 되었다. 시심이랄까 오기라고나 할까, 아니면 한국어로도 멋진 정형시를 써보겠다는 자부심이라고나 할까, 아니면 군에서 제대하고 한가한 1주일을 지내면서 군대기간에 배운 것과 감사한 것을 가장 잘 표현하는 것이 정형시였다고나 할까. 아무튼 7일밤 7일낮을 3끼니를 제외하고는 하루에 10시간 이상은 정형시를 썼고 또 썼다. 그리하여 각 연은 16음절이 5줄인 80자로 구성된 정형시로 전부 12800자의 정형시를 완성하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어떻게 그런 열정이 생겼는지 신기할 정도이다. 만일 내가 문학의 길을 걷게 된다면 여전히 정형시를 쓰는 시인이 되고 싶다.

이 정형시를 읽어 본 독자는 그리 많지 않다. 사랑하는 아내가 연애시절에 내가 권해서 1번 읽어 보았고 이제 남은 독자라면 성장하는 자녀들이다. 그런데 나를 제외하고는 2번 이상 읽어본 독자는 아직 없었다. 과연 우리 딸은 12800자 중에서 몇글자를 읽어보게 될는지 기대해 본다.
by 금메달.아빠 on 2011. 8. 10. 20: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