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과 거짓을 구별할 나이가 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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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언젠가 자라면 진실과 거짓을 구별해야 할 나이가 된다. 그리고 거짓된 뉴스와 진실을 가장한 왜곡된 것들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까를 가르쳐 주어야 한다.

상업주의의 영향이다

예를 들면 국제 대회에서 별로 잘하지도 못하는 유명 스포츠 선수가 무슨 대회만 되면 대중매체에서 취재되고 인터뷰를 통해 소감을 접하지만 성적만 놓고 보면 더 잘하는 선배 선수가 있었다고 한다면 이는 공정한 보도가 될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대중 매체라는 방송사의 입장에서는 광고 수입을 고려하여 방송 기획을 해야하는 영리 단체로서 수익과 연관된 영업활동을 하는 것이 상업주의적 사고방식이 주류를 이루는 이시대에는 아무도 비난할 수 없는 당위로 여겨지고 있다.

오히려 공정성을 논하고자 하는 사람이 있다면 많은 비난을 감수하고 홀로 저널리스트임에 긍지를 가지고 만족하여야 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면 진실은 어디에 있는가? 우리가 듣고 접하는 다양한 소식 통로로서 텔레비젼, 라디오, 인터넷 매체, 블로그와 소셜네트워크, 신문 등 어느 서비스를 보든지 광고 회사가 얼굴을 내밀지 않은 곳이 없다. 이러한 통로를 통해서 접하는 수많은 정보가 상업적이든 정치적이든 이해관계를 떠나서 왜곡되지 않은 진실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불신을 가르쳐 주는 분위기

우리 아이들이 자라서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쳐서 '세상에는 믿을 만한 것이 없다'는 결론을 내리기 전에 올바른 분별력과 믿어야할 것을 가르쳐 주어야 한다. 이러한 책임은 험난하고 상업주의적 시대를 살고 있는 부모에게 날마다 통감하는 부분이다. 분별력을 가르쳐 주지 않아 불신이 팽배하도록 방관해서는 안되며 반대로 아무말에나 속아 넘어가서 맹신하도록 방치해서도 안된다.

아이들만 집을 보는 경우가 생길 때를 대비해서 나는 무엇을 가르쳐 주어야 하는지 가끔 고민되기도 한다. 7마리 아기 염소의 동화에 나오는 것 처럼 모르는 사람이 초인종을 누르면 무조건 절대로 문을 열어주지 말아야 한다고 가르쳐야 하는가? 집에 엄마가 없다고 말하지 않도록 --- 일종의 거짓말인데 --- 할 것인가, 아니면 아예 초인종 소리를 무시하도록 가르쳐야 할 것인가? 어떻게 가르치든지 이 시대에 깔려 있는 위험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하여 암암리에 일종의 불신을 가르쳐 주게 된다. 놀이터에서 모르는 사람이 사탕을 준다고 하더라도 따라가지 말도록 가르쳐 주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 되어 가고 있는데 이것도 암암리에 사람간의 불신을 가르쳐 주는 셈이다.

행복을 물려주자

결국은 불신을 유산으로 남기고 모든 것을 왜곡된 것으로 바라보도록 방치하는 것은 다음 세대에 행복을 물려주는 것이 아니라 불행을 물려주는 것이다. 우리나라가 물질적 풍요와 번영을 달성한다고 하더라도 정신적으로 피폐된 유산을 다음 세대에 물려주게 된다면 이는 올바른 것이 아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바로 지금부터 부모로서 좀더 신뢰를 가르쳐 주고 진실을 가르쳐 주고 상업적인 행동을 자제하고 분별력을 가르쳐 주어야 한다.

30여년전 적어도 내가(아빠가) 어렸을 때는 다세대 주택이 많이 있었고 전화도 많이 보급되지 않았던 시절이 있었다. 문단속을 하기 전까지 대문은 대개 빗장이 걸려 있지 않았다. 시골에서는 "마실 간다"는 말이 있어서 저녁을 먹고나서 이웃집에 아무런 연락이 없이 --- 연락할 방법도 없었고, 직접 찾아가는 것이 연락이었다 --- 불쑥 찾아가서 이야기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시골 외가댁에는 마을에 이장님집외에는 전화기도 없었고 텔레비전이 없었다. 그래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이장님 집에는 텔레비전을 보려는 아이들로 성황을 이루었다. 물론 텔레비전 채널은 아이들의 다수결로 정하기도 했지만 대개는 이장님이나 이장님 자녀가 보고 싶은 채널을 정했다. 어쩌다가 옥수수 간식이라도 얻어 먹으면 재수가 좋은 날이고 그집 아이들만 간식을 먹는 것을 보더라도 서럽기는 커녕 텔레비전 보는 것으로도 감지덕지하였다. 아무튼 아무 이유없이 아이들이나 어른들이나 열려 있는 문에 들어가서 수다를 떨거나 텔레비전을 보거나 음식을 나누어 먹는 일이 흔했다. 저녁을 들다가도 이웃집에서 반찬했다고 접시를 들고 오는 일이 있었고 누가 이사라도 오면 시루떡을 얻어 먹었다.

그러나 지금은 같은 아파트에 사는 아는 사람의 집에 잡채 한 접시를 나누어 주려고 해도 먼저 전화를 해서 사람이 있는지 확인해 보고 지금 가겠다고 연락을 해야된다. 다세대 주택 마을은 찾아보기 어렵다. 낮에도 현관문은 항상 걸어 잠그고 이중빗장을 걸어 두지 않으면 마음이 불안하다. 어쩌다가 잠그기를 잊고 2시간이 지났다면 10년 감수했다고 생각한다.

(식물원: 아래를 향해 피는 꽃)


앞으로 30년 또 한 세대가 지나면 어떻게 될것인가? 지금은 어린 우리 아이들이 자라서 행복하고 진실과 거짓을 올바로 분별할 줄 알며 신뢰와 믿음을 바탕으로 살수 있도록 아빠의 책임이 크다.
by 금메달.아빠 on 2011. 1. 8. 01:49